살며 사랑하며^^/별별 이야기^^

따귀맞기 - 에리히 케스트너

-검은배- 2009. 8. 9. 16:44

 

 

따귀맞기 - 에리히 케스트너

 

특별히 맞춘 운명이
스스로의 속도와 주기로
인간을 찾아옵니다
호된 따귀 한 대가
이번에도 찾아왔습니다

자, 괜찮습니다
산다는 일이 원래 그런 것
얼추 올 때가 되었던 따귀였고
살짝 피하는 데 실패했을 뿐입니다

운명은 거의 표적을 맞춥니다
으스대던 얼굴이 한 방 먹으니
팡, 하고 큰 소리가 난 것뿐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니
자, 추스르고 일어나세요

호수의 물결은 잔잔하고
저 멀리 산들은 눈에 덮였습니다
햇볕이 따사롭고
새들이 지저귑니다
왜 이렇게 호된 따귀를 맞아야 했던 가를
한 번 짚어 볼 필요야 있겠지요

운명은 오늘과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가끔 놀리고
호되게 때리기도 하겠지요
맞으면서 조금씩 영리해지는 법입니다
아직은 두들겨 맞을 일이
한참은 남아 있고
그리하여 어느 날
결정적인 타격이 찾아옵니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에리히 케스트너는 독일에서 시인이자 정신과 의사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전쟁과 우울과 외로움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람들을 위해
약과 주사가 아닌 시의 언어로 마음의 버팀목을 마련해주려 노력했지요.
이 시도 그런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그것이 정해진 것이었든 아니든 간에
운명이 우리에게 힘껏 내치는 아픈 따귀에
가끔은 정말 주저앉아 일어날 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시인은 그 때마다 영리하게(?) 벌떡 일어나
아픈 따귀를 내친 운명에게 멋진 반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일어날 수 없는 운명의 끝이 아닌 이상
운명에게 그렇게 당했다고 울지만 말고 일어나라고 하네요.

이 세상에 시인의 말처럼 쉽게 운명을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지요.
운명에 맞서 반전을 일으키기가 쉽진 않아도,
그래도 우리... 계속 주저앉아 있지는 말자구요.
바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날 힘들게 한 운명을 째려보기라도 해요.
그냥 앉아서 울고만 있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도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니까요.

 

                                                   -검은배 -





      

'살며 사랑하며^^ > 별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개인날...문의 구룡산에서  (0) 2009.08.10
그 남자 검은배..  (0) 2009.08.10
해바라기  (0) 2009.08.09
Torn Between Two Lovers - Mary MacGregor   (0) 2009.08.09
별일 없이 산다^^  (0) 200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