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슬픔과 고뇌 -영성

평신도의, 평신도에 의한

-검은배- 2009. 12. 14. 23:44

평신도의, 평신도에 의한
-우리신학연구소 15주년에 부쳐
2009년 12월 09일 (수) 11:14:11 호인수 hoinsoo@hanmail.net

 

 

 

 

 
▲우리신학연구소 15주년 감사잔치에서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호인수 신부(사진/김용길)

(사)우리신학연구소가 창립 15주년을 맞았다. 창립 준비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해온 나는 특별히 감회가 깊다. 5년 전, 명동성당에서 10주년 기념잔치를 할 때, 앞으로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용케 15주년을 맞은 것이다. 용하다는 표현이 맞다. 나는 하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면서 우리 연구소가 앞으로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구소의 대표자로서 사석도 아닌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비관적인 표현을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랴 싶었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그랬다.

너무 성급히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거나 노력의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물론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평신도 신학자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한국천주교회에서 준비 단계부터 따지면 20년이 훨씬 넘는 짧지 않은 세월을 알토란같은 젊은이들이 ‘민족의 복음화’와 ‘신학의 대중화’를 이루어보겠다고 젊음을 송두리째 바쳐온 연구소다. 연구소에 대한 나의 애정을 넘어선 애착의 이유다.

이들의 헌신으로 지난 20년 동안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와 성직자는 어떻게 얼마만큼 달라졌나. 혹자는 딱 짚어 이거다 라고는 할 수 없어도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의 위상이 이만큼이라도 높아진 게 다 그 덕 아니겠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주교, 신부들은 평신도를 자신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그래서 불쌍히 여기고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 미성숙자로 보는 풍토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나도 성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하는 게 매우 ‘쪽팔리는’ 일이지만 오늘날 ‘교구장이나 본당신부의 의지=하느님의 뜻’이라고 믿는 한국의 많은 성직자들이 스스로 평신도 양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이 설령 인심 써서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마르 7,28)를 허락한다 하더라도 그런 선심성 동냥은 받는 이의 자존심만 상하게 할 뿐이다.

전국의 7개 신학교에서 평신도가 중요한 보직을 맡고 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교수를 채용하는데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고 정정당당히 실력을 겨루게 했다는 말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아무리 평신도 젊은이가 청운의 뜻을 품고 훌륭한 신학자가 된다 한들 그에 걸맞은 자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교회 산하 연구소의 직원이거나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되어 고달픈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평신도 연구소의 앞날이 결코 창창할 수가 없다. 여러 은인들이 눈물 날만큼 고마운 도움을 주지만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엄청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게 아닌 한, 학생 한두 명에게 학비를 보태주는 일은 막말로 생색도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보다 더 큰 어려움은 사람이다. 젊은 인재를 발굴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은 고생고생하며 10년이 넘게 신학을 공부해봐야 작금의 한국천주교회의 상황을 보면 빌어먹기 십상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평신도와 함께 균형 잡힌 삼발이가 되지 못하면 교회는 바르게 서지 못한다. 자연을 훼손하면 인간도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당연한 이치와 같다. 평신도 신학연구단체의 초석임을 자부하는 우리신학연구소가 건강하게, 꼿꼿하게 서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멀리 창원에서까지 연구소 15주년 잔치에 참석하러 온 사람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연구소는 성공한 겁니다.” 라며 연구소를 “청하지 않은 자식”이라고, 그러나 “새 하늘 새 땅을 꿈꿀 자식”이라고 축시를 낭송해준 김유철씨는 나를 위로(?)했다.

호인수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주임신부,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첨부파일 20-EnnioMorricone-TieMeUp!TieMeDown!(3).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