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별별 이야기^^

작은 비석 이야기

-검은배- 2009. 7. 13. 02:36

 아주 작은 비석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작지만 세상 어느 돌멩이 보다 의미있고 무거운...  그런

돌멩이 얘기입니다.

이 나라 금수강산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검은 돌(오석)이야기 입니다.

 

산모퉁이 한 켠에 나는 살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유난히 검고, 자르르하니 윤기가 흘러 사람들은 우리를 오석이라

부르며 무척 이쁘게 보아 주곤 하였습니다.

세상에 그 이름을 크게 떨치는 문장가의 벼루가 되기도하고,

명문세가의 무덤돌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누대에 걸쳐 우러름 받는 비석이 된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꿈을 키우고 있었답니다.

동네에 용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언젠가 먼 훗날 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의 얼굴을 새긴 비석이 되어

모든이의 추앙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린시절의 난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고 키우며

꿈꾸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서천의 집에서 잘려나와 낡은 복사 트럭에 실려

가덕의 어느 석재공장으로 실려왔습니다.

예리한 그라인더에 잘리고 해머에 머리를 얻어 맞았지만,

이제 드디어 훌륭한 위인의 얼굴을 내 얼굴에 새긴다는 기쁨에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는, 너무나 행복했으니까요.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눈에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느껴졌는지,

나는 석재공장 한 구석에 내박쳐진 채 아무의 이목도 끌지 못하고,

그렇게 몇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꽃이 피어나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병아리 떼처럼 줄 맞춰 소풍을 가거나

귀밑머리 보송보송한 앳된 수녀님들이 가끔씩 노래를 부르며 지나치곤 할 뿐

일거리 그다지 없는 공장엔 돌 다듬는 기계소리 멈춘지 오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어린날의 꿈도 접어버리고 희망없는 삶을 그럭저럭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고요하던 공장이 사람들의 소리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몇 몇 사람들이 찾아 와 솜씨좋으나 하릴없이 지내던 석공과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며

구석자리의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석공은 전에 없이 정성을 다해 내 얼굴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그 편한 기계작업도 마다하고,

한 번 두 번 ... 마치와 정 만을 사용하여 온정성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

내 얼글을 매만짖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와 말하길 참 바보같은 사람이라며...

혀를 끌끌차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만 불안 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적 할머닌 분명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의 화상을 내 얼굴에 새길 것이라 했는데,

바보라니?

그렇담 바보같은 사람의 얼굴을 새기자고 저렇듯 땀을 흘리는 석공은 또 무어람?

 

 

 

어느덧, 작은 비석이 완성되어가는지 석공은 시큼 텁터름한 가덕 막걸리로

내 얼굴을 닦아내었습니다.

새롭게 변했을 내 얼굴이 너무도 궁금하였던 나는 옆에 서 있던 어느 기업가의 아버지

묘로 떠나기 위해 다듬어진 동료 오석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내 얼굴에 새겨 진 바보...그는..깊게 주름이 파인 이마와 불거진 광대뼈를 하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아니, 잘 생기기만 했고만~ 왜 사람들은 바보라고 한 거람?

 

이윽고 석공은 나의 얼굴을 흰 천으로 가렸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나는 기중기에 실려 전에 것 보다는 좀 사정이 나았으나

낡기는 매 한 가지인 트럭에 실려서 청주로 향했습니다.

상당공원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상당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공원은 경찰들이 몇 겹으로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내 얼굴이 무슨 흉악범이라도 되는 걸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또 있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수백명이나 몰려와선 나를 향해 주먹을 불근 쥐어

보이며 갖은 욕설을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군복은 무엇이며,

하나 같이 남대문에서 갓 사입은 것같은  새 군복이라는 게 신기했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갓 퇴소한 것도 아니고~

이해의 실마리를 곧 발견했습니다.

아, 저게바로 일당 받고 동원되었다는 소위 알바라는 것이로구나!

 

결국 ... 나는 상당공원에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트럭을 탄 채 공원을 몇 바퀴돌고, 청주 시내를 두어바퀴 돈 다음

근처의 수동성당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를 만들고 이곳까지 데려 온 사람들이 성당 신부님께 사정을 했고,

키 작은 노인 신부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그곳에 받아 주었습니다.

성당이 생긴 50년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고,

우암산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이곳 성바오로 서원 앞에 나는 임시로 거처를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 늦게 까지 촛불을 밝히고 나를 지켜 주었기에

나는 낮설은 이곳 성당에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청주시장 남상우도 천주교 신자라던데...그럼 그는 순 나이롱 신잔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같이 하잖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수백명의 전의경은 무엇이고,

늙은 군복들은 무엇이람~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래 돌 머리냐구요?

 

아침이 밝았습니다.

성당 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이 근심어린 얼굴로 내게 아침 인사를 건냈습니다.

그리고 어제의 그 군복 할아버지 중 한 분이 내 앞에 나타나서는

이북으로나 가라고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 붇다 사라졌습니다.

노인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져 무서웠습니다...살짝...

 

그런 잠시 후, 교구청이란 곳에서 꽤 높은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누군가의 명이라며 나를 치우라고 하더군요.

성당의 노 신부님께서 나를 두둔해 주시더군요.

힘없는 약자들이 들어 온다고 해서 들어오라 했을 뿐이고,

평생을 이곳에 눌러 있을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 거처가 마련 되는대로

떠나기로 했을 뿐이고...

그 저 돌일 뿐인데...하느님만 무서워 하면 되지,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고...

왜들 난리냐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교회정신 아니냐고...

그러자 교구청에서 왔다는 높은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노 무현이 약자냐고...

 

노무현. 그렇군요? 그랬었군요?

내 얼굴에 새겨진 이 사람이 노무현이었군요.

 

나는 지금 수동성당에 있습니다.

주일인 오늘은 참 많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가끔씩 삿대질하던 늙은 군복 할아버지들이 오기도 했지만,

오늘은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비가 내렸고요...그렇게 하루가 지나 갔습니다.

해지고 어두운 지금,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지만,

뭐 어쩌기야 하겠습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안에 새겨진 노무현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내에게 왜 다들 미안해하는지, 왜 고마와 하는지,

살기 띈 눈으로 늙은 새 군복들은 또 왜 그렇게 그악스레 삿대질을 하는지,

난 모든게 궁금합니다.

 

그저 검은 돌멩이에 불과한  내게 있어 노무현, 그의 의미는 무엇인지?

 

                                                          - 검은배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ost)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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