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면 인차리...주유소 사거리에서 공원묘지 쪽으로
마른 체형에 유난히 젖가슴이 큰, 언밸런스한 동남아시안 새댁이
가방을 들고 걸어간다.
두어 걸음 뒤에 그다지 늙지 않은 한국 시어머니가 유난히 눈동자가 까만
고수머리 아기를 포대기에 싸 안고 뒤를 따른다.
가을 소슬한 바람이 새댁의 귀밑머리를 살랑~ 흔든다.
청원군 다문화 지원센터(이주여성지원센터)로 둘은, 아니 셋이 들어간다.
한국으로 시집 온 필리핀, 혹은 베트남 며느리에게 한글을 배워주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시골에선 낯 익은 혹은 낯선 풍경...
추석을 앞 둔 어느날,
수녀원에서 급한 일로 날 찾는 전화가 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 그날따라 난 손전화를 충전기에 꽂아 둔 채 출근을 했고,
그 바람에 성당에서, 수녀원에서 날 찾느라 여기저기 전화하며 수배한 끝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아내가 우리 센터의 전화번호를 일러주어 소동은 가라 앉았는데...
내용인즉슨 이러하였다.
청원군 다문화 지원센터가 남정네의 손길이 없다보니 추석을 앞두고
풀에 묻혀 폐가처럼 되어 동네 미관을 해진다고
어떤 마을 인사가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단다.
기관을 운영하는 수녀님들에겐 여간 낭패가 아니었고,
봄, 가을로 들러 제초작업을 해 주는 나를 찾을 수 밖에...
그러잖아도 지난 주에 수녀님을 만나서 돌아오는 토요일엔 내가 예초기 가지고 가서
풀을 베 드리마 약속한 터였는데...그 사이 사단이 난 것이었다.
땡볕에 혼자 풀을 베면서 마음이 편치않았다.
동네에 이런 시설이 들어 와 있으면, 적어도 동네에서 이 정도의 수고는 해 줄 수 있는거 아닐까?
행세꽤나 하는 단체가 들어 왔어도 이따위 대접을 했을까?
아마도 야리야리하고, 까무잡잡한 여인네들(제삼세계에서 온 삼등국민들)이 드나들고,
사람같지 않다고 깔 보고, 얕잡아 보는 마음이 기저에 깔렸으니
이런 따위의 행위들을 하는 것일게다. 별수없이 지들 며느리들이건만...
짓쳐나가듯 풀을 베고 인차상회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샀다.
점방 아주머니가 날 보고 어디서 왔냐? 자원봉사냐? 왜 이런 일을 하느냐?
품삯은 받는거냐? 따위를 물어 왔다.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따위로 민원이나 넣고 신고를 하다니 동네인심 좀 사납다 하였더니,
점방 아주머니 왈,
여자들이 수십명씩 드나들면서 풀 한번 뽑는 걸 못보니 동네사람들이 다 그런단다.
여편네들이 게을러 빠져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아무렴, 그렇지..그렇고 말고!
가난하고 무지한 나라에서들 왔고, 게다가 피부색까지 까만 유색인종들인데
오죽할라고...
그런데 왜 돈까지 얹어 주고 사다가 며느리 삼았는데?
지금 소인수 학교 통폐합때문에 시골 학교가 다 없어지는 추세인데,
그나마 시골학교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구심점을 이어 가는 게 저들의 아이들이고,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에게 맏겨진 아이들이고 보면,
나라꼬라지 참 우스운게 현실이건만,
공동체의식이라고는 쥐 뭣 만큼도 없는 인사들이 이 맑은 가을공기를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풀을 다 베고 예초기를 분리하여 차에 싣는즈음,
어딘가에서 수녀님과 새댁들 한 무리가 봉고차 가득 센터에 돌아왔다.
고맙다 수고하셨다...인사를 받으며,
하늘을 본다.
봉사를 하고나서 느끼는 보람 같은 것 보다는,
저 여인들에게 무언가 먹먹함을 심어 준 가해자들의 한 무리에 이 몸 또한 섞여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다. 날씨 한 번 환장하게 좋다.
내 눈엔 다 고만고만...똑같은 일란성 쌍생아같은 여인들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국에서의 명절 추석을 행복하게 맞으시라 기도 해 본다.
저들의 남편들은 평등추석이 뭔지는 알기나할랑가?
낯 익은...그러나 낯선 풍경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이
낯 익은 이 길이..오늘 왜 이다지 낯이 선 걸까?
다시는 / 유익종
다시는 다시는 슬퍼 울지않으리 내님 말없이 떠나갔어도
거리에 빗물이 소리없이 내리면 그 비 속에서 눈물 감추리
내사랑 빨갛게 저녁 노을에 물들어 가만히 가만히 서산에 져도
하늘에 푸르른 그 빛깔만 꿈꾸며 다시는 다시는 슬퍼 않으리
밤마다 어둠 자욱하게 나를 감싸도 혼자서 사랑 아름답게 수놓으리라
세월이 흐른 새벽길을 걸어보아도 내 마음 노래 바람따라 흩어지네
그러나 슬픈 눈빛으로 날 보는 초라한 그 모습 나를 울리네
또 다시 사랑에 빠져드는 이마음 다시는 다시는 후회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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