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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위한 제언 - 칭찬합시다.

-검은배- 2009. 11. 18. 16:42

 

 

 

[사회] 외모 지상주의 사회를 위한 제언 - 칭찬합시다.


2009.11.18.수요일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1. 키무라 카에라

 

 


 


일본에 키무라 카에라라는 가수겸 모델 아가씨가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매우 좋아하는 누님이다만, 오늘은 짧게 설명하겠다. 일단, 가수가 본업이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일본의 여중고생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는 '세븐틴'이라는 잡지의 모델을 하게 되면서(그리고 결정적으로 카나가와 지역방송의 아침 프로그램 'sakusaku'를 통해 압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방송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지)이지만, 본인은 어렸을 적 부터 가수를 꿈꿔왔고 지금도 노래 부르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버뜨, 워낙 외모가 받쳐주시는 분이라(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 아가씨는, 카토 로사 등과 함께 일본 연예계의 '이쁘장한 혼혈 아가씨' 카테고리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잡지모델이나 의상모델 일은 요즘도 하고 있다. 또, 파격적인 헤어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세븐틴 전속모델 당시 이 아가씨의 영향력은 꽤나 막대했다. 사실, 일본처럼 특히 패션에 관한한 '개성'이 살 길인 나라에서 한 두 명의 모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일은 꽤나 드물다. 그냥 그 분야의 그 스타일에서 어느정도 먹어주는 모델이 되면 매우매우 성공한 거다. 그리고 키무라 카에라는 10대 후반에 바로 이 반열에 올랐다. 여고생을 중심으로 귀엽고 튀는 룩을 선호하는 아가씨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델이 된 거다. 사실, 가수로 데뷔할 때 '모델 일 전념하면 성공은 보장된 건데 왜 모험을 하나'는 말이 흘러나왔을 정도다. 라이브 한 번 보여주고 난 다음부턴 음반 관계자도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만.

 

근데 말이다, 이 이쁘장한 누님의 키는 과연 얼마일까?


프로필 상으로 확인된 그녀의 신장은 정확히 152cm이다. 오타낸거 아니다.

 

유투브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WzGuEsn6deI

 

영상 하나 보고 들어가자. 이건 그녀의 솔로가 아니라, 일본 록 밴드의 전설로 알려진 '새디스틱 미카 밴드'가 카에라를 프로젝트 보컬로 받아들여 잠시잠깐 활동한 '새디스틱 미카에라 밴드'의 타이틀곡 화면이다. 활동기간이 한정된 프로젝트 그룹이었다만, 당시 신인에 가까웠던 키무라 카에라가 그야말로 전설이라고 할 만한 새디스틱 미카 밴드와 호흡을 맞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면 알겠지만, 그럭저럭 중간키 정도 되는 미카 밴드 멤버들 사이에 세워두면 꼭 조숙한 초등생이 방방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까 말했지만 그녀는 모델로 연예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키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패션쇼에 등장해서 런웨이를 주름잡는 모델은 아니고, 주로 사진을 통해 잡지에서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 모델이긴 하지만, 일본인 가운데서도 작은 축에 드는 이 키로 그녀는 '인기있는 패션 모델'자리를 당당히 꿰어 찬 거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는 나의 오랜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난 늘 키 크고 늘씬한 패션 모델들을 보면서 한 가지 매우매우 궁금한 점이 있었다.

 

'도대체 키 작은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옷은 누가 입고 광고해 주나?'

 

2. 미(美)의 승자독식 사회

 

내가 20여년을 살아온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금 내 기준에선 '미의 승자독식 사회'다. 간단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예쁘다, 아름답다, 잘 생겼다, 미남이다 등등, 외모에 관한 칭찬은 '정말 그런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문제는 그 '정말 외모가 빼어난 사람'의 기준인데, 이 기준치가 정말이지 비정상적으로 높다. 즉, 연예인(가운데서도 외모가 매우 받쳐주는 사람)이나, 흔히 말하는 킹카니 퀸카니 소리를 듣는 아름답거나 멋진 얼굴과, 늘씬하고 균형잡힌 몸매와,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와 개성적이고 멋진 헤어스타일과 옷 잘 입는 센스 기타등등 여러가지 기준을 만족시켜 국민 대부분이 그 사람의 준수한 외모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외모에 대한 칭찬'을 차지할 권리를 누린다.

 

선택받은 자들

 

(2) 그 외 나머지는 기분과 장소에 따라 남을 칭찬하거나 헐뜯거나 돈을 모아 성형수술할 권리 및 의무를 진다.

 

그 외의 인류

 


요런 상황이라는 거지.

 

혹여 이것이 나의 참으로 암담한 외모와(난 중학교때 부터 거울 보는 걸 싫어했다) 그에 따른 컴플렉스 때문에 생긴 오해라면 댓글을 통해 반박해 주길 바라지만, 내 눈에 비친 한국사회는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였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성형을 하지 않는 이상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없고, 잘생기지 않은 남자도 마찬가지다(특히나 독자제위의 여친 혹은 남친이 아이돌 그룹에 빠져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게다가 그 이쁘고 잘 생겼다는 기준이 매우 암담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다. 좀 과격한 표현을 쓰자면, 그냥 '영화배우 같은 외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그게 우리네 삶에 득이 되면 얼마나 될 텐가.


3. 덤핑을 아시나요

 

또 일본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미안하다. 하지만 어쩔텐가. 내가 한국 말고 살아본 나라가 이 나라 뿐인데. 불만 있으면 나 여행자금 하게 돈이나 부쳐 주시라. 유럽 한 바퀴 돌아보고 글 써 드릴테니(그냥 다른 딴지 필진의 글을 읽으시는 게 훠얼씬 경제적이겠지만).

 

내가 처음 일본에서 생활하며 제일 먼저 적응해야 했던건 '아름답다'라는 표현의 비과세 덤핑 현상이었다. 이 나라 아해들은 정말이지 남의 외모를 참 열심히도(그리고 잘) 칭찬했다. 언젠가 학교 아해들과 술자리를 갖고 며칠이 지나서 내 일본인 친구가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야, 저번에 술 같이 먹은 애들 중에서, 니 맞은편에 앉았던 그 이쁘장한 애 있잖아'

 

'... 누구?'

 

'어? 까먹었어? 걔 있잖아, 뽀얗고 이쁘장한 애. 니 맞은편에 앉았던'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맘속으로) 문제삼은 것은 그가 사용한 '이쁘장한'이라는 형용사였다.


당시 일본에 건너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한국식' 미의 기준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내 기준에서 '예쁘다, 아름답다, 미인이다'라는 식의 표현은 외모 총점 85.00 점을 넘기는 여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언어자원이었다. 그런데 내 친구와 내가 참석(해야)했던 술자리는 안타깝게도 평균총점 62.475점의 여성들로 구성된 아주 안주 맛 올라가는(술맛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자리였으며, 특히 내 맞은편의 그 아가씨는 내 기준에선 48.92점이었던 거다.


참고로 좌측 두번째는 약 57.21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당연히 나의 이 감성을 그 친구도 공유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고, 따라서 그가 그 날 술자리에 참석했던 여성들을 형용하면서 저런식의 귀중한 언어자원을 낭비하는 비경제적이고 몰상식한 망발을 보이리라곤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문제의 '맞은편 아가씨'의 인상착의(주로 그날 입었던 옷)을 조심스럽게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걔 말야. 너도 기억하네'


아, 그러세요.    
 

진짜 상당한 컬쳐쇼크였다.

 


 4. 나와 다른 너, 너와 다른 나.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이다. 일본 생활이 조금 길어지면서, 나도 이 '아름답다'라는 말의 저가 매도(싸게 판다는 뜻이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묘한 반발심도 있었고, 내 나름대로 분석도 해 보려 했다. ①한국과 일본은 미의 기준이 달라서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건가? ②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쳐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쁘지 않은 애를 보고 굳이 이쁘다고 칭찬해야 할 이유가 있나? ③혹은 이게 저 유명한 일본식 혼네-다테마에로 저들은 사실 다 집에가서 뒷담화를 깔 요량으로 앞에서만 저렇게 칭찬질을 해 대는 걸까?

 

우선, 한국과 일본의 미적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식의 설명은 솔직히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한국 여자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오, 일본 여자라고 다 싫은 것도 아니니. 개인의 외모란 결국 개인의 취향이며, 국적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테이스트에 맞아 떨어지는가 아닌가가 문제인거다. 게다가, 외모의 최종적인 보완수단인 '성형수술'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천편일률적인 '이런 얼굴이 아름답다'라는 기준에 억지로 성형수술 대상자의 얼굴을 맞춰나가는 요즘을 세태를 보면, 그 잘난 미적 기준이라는 것도 솔직히 의심스럽긴 했다. 문제는 두번째와 세번째 의문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저 너무 오래되서 곰팡내가 나는 떡밥, '혼네-다테마에'논쟁 말이다.

 

이걸 한국에 소개한건(혹은 퍼뜨린건)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시리즈로 기억하는데, 난 이 논쟁이 참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것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직장생활 하면서 상사한테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고 사는 사람 있나? 이등병때 동기끼리 선임병 험담 안해본 예비역 있나? 뒷담화라는 말이 왜 태어난 건데?

 

천 번 양보해서 일본인은 약삽하게 혼네 다테마에가 있고 한국인은 솔직담백해서 그런 거 없다고 쳐 보자. 그게 누구한테 득이 되나?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있는 루저 논란. 이건 저 논쟁의 잣대로 이야기하면 '약삽한 일본놈들 처럼 뒷담화 까지 않고, 솔직담백한 한국인답게 스스로 생각한 바를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 된다. 저 당찬 발언으로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보았나? 난 애시당초 일본의 국민성에 뒷담화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남 앞에서 막말하는 것 보다야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정리하면, 혼네-다테마에라는 건 그냥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속성일 뿐이고, 경우에 따라선 그게 서로 상처받지 않는 예의바른 사회생활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괜히 일본인만 그런 것 처럼 도매금으로 넘기는건 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본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가 왜 예쁘다는 생각도 안 드는 아해를 예쁘다고 칭찬해야 하나. 내 의문점은 여기서 출발했다.

 

이 즈음에서, 난 그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말의 기준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의 기준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단순했다. 연예인. 그것도 내 취향에 맞는 매우 아름다운 연예인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그것을 양궁 과녁의 카메라렌즈로 삼아서 그 기준에 가까울 수록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85.00점을 넘기지 않으면 이쁘지 않은 거였다.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하고, 피부 깨끗하고, 눈 크고, 이목구비 뚜렷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노란 부분만 미인이다

 

그게 진짜 예쁘다는건 나도 인정한다. 근데, '그래야 예쁜건가?'

 

하루는 친구넘과 술을 마시는데, 내 기준으로 63점 되는 아가씨의 칭찬을 정말이지 죽어라고 주워 섬기는 거였다.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넘이었으니 뭐 참아줄 수 밖에 없었다만, 계속 듣다 보니(그리고 대충 맞장구를 치다 보니) 다음 날 그 아가씨를 교실에서 만났을때 정말 좀 예뻐 보였다. 가만히 보니 웃는 얼굴도 좀 귀여워 보이고, 자그마한 키도 은근히 매력포인트 같고, 왼쪽 뺨에 점이 세 개 정도 있어서 평소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것도 그냥 그 아가씨의 개성이자 그녀다운 아름다움의 일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뇌가 되어 간 게지.

 

이런 경험을 몇 번 거치고 나서, 난 드디어 내 마음속의 점수판을 걷어치워 버리게 된다.

 

내 멋대로 기준을 세워 세상 여자들에게 점수를 매기고 그 총점에 따라 '예쁜 여자, 안 예쁜 여자'로 구분짓던 내가 얼마나 찌질하고 얼빠진 병신이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 거다. 내 눈에 23점인 여자도 그 여자 좋아서 죽겠다는 남자한텐 김태희씨 보다 아름다운 여자다. 그걸 내가 '걔? 안 예뻐 새꺄' 그런들 도대체 누가 행복해지나. 내 양심이 만족되어 내가 행복해지나? 준 거없이 나한테 추녀 소리 들은 그 아가씨가 행복해지나? 아님 그 아가씨 한테 목 메다는 그 남자가 행복해지나?
 
'아, 걔? 진짜 미인이지' 이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행복해 질 수 있었다. 남을 칭찬한 나는 그 날 그 친구와 즐겁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고, 비록 직접 듣지는 못했겠지만 미인 소리 들은 그 아가씨도 행복해 질 테고, 누구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 대한 칭찬을 들은 내 친구도 행복해 진 것이다. 세상이 조금 밝아지는 순간이지. 내 개인적인 심미안이나 취향따위 개나 줘 버리라지. 내가 그 아가씨 데리고 살 것도 아닌데 왜 그딴 걸 여기서 목숨걸고 지키고 표현해야 하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왜 이걸 여태껏 모르고 살았던가 하고 오히려 억울해질 지경이었다. 남 여친이 김태희씨 만큼 이쁘면 어쩔텐가. 또, CG필요없이 괴수영화에 나올만한 아가씨면 또 뭐 어쩌라고. 나랑 잘 것도 아니고 나하고 결혼하자는 것도 아닌데. 저 정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여자라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쁘다고 칭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이지 세상은 조금 행복해졌다. 나도 행복하고, 칭찬 들은 아가씨도 행복하고, 그 아가씨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행복하고. 그 마법의 한 마디는 정말 간단했다. '아, 걔? 진짜 이쁘지'.

 

처음엔 좀 '어거지'였다. 이건 솔직히 고백한다. 독자제위는 일본 여성의 외모에 대한 험담을 참 많이들 들어 보셨을 거다. 굳이 부정하지 않겠다. 이 나라 아해들이 성형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아가씨들도 많다. 버뜨, 이 한마디는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이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설령 뛰는 것 보다 구르는 것이 빠를 것 같아 보이는 아가씨라 해도 집에 가면 예쁘고 소중한 딸이고, 얼굴에 잡티가 많아 평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애도 친오빠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동생이다. 내가 무슨 견성득도한 종교인은 아니지만, 까짓거 큰 맘 먹고 칭찬하려고 들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칭찬할 구석 한 두 군데 찾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신만의 매력이란 걸 가지고 있고, 그걸 찾아내서 칭찬하면 되는 거다. 천편일률적인 미의 기준보다, 그냥 그 사람 자체로 예쁘고 아름다운 거다. 뚱뚱해? 글레머러스한거다. 키가 작아? 니 얼굴 니 성격에 니 키는 진짜 딱이야. 짱 귀여워. 난 쌍꺼풀 보다 홑꺼풀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 200명 정도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 모두 행복해졌다.

 


5. 하늘은 남을 돕는 자도 돕는다

 

일본이라고 외모 폄하하는 사람이 없는 거 아니다. 2ch가면 차고 넘친다. 여자 개그맨 중엔 그걸로 먹고사는 분들도 계시고. 한국이라고 다 외모 지상주의인 것도 아닐거고. 이건 솔직히 한일간의 차이라기 보단 내가 살면서 겪은 집단의 인식차이일 거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다닌 중고등학교와 대학은 이 글의 전반부에 표현한 '미의 승자독식'이 좀 지나치게 강하게 지켜지는 커뮤니티였고, 그 뒤 내가 유학생활을 통해 경험한 일본의 대학은 일본 가운데서도 좀 유별나게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는 좋은 문화가 정착된 곳이었다. 양국을 통해 정 반대의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내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적을 떠나 '외모를 폄하하는 사회'와 '외모를 칭찬하는 사회'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문화는 충분히 정착될 수 있고 또 정착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취지에서 이 글을 쓴 거다.

 

마무리로 내 '칭찬하기'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를 소개하고 싶다. 그건 바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내가 아직 마음속의 외모 점수판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던 시절, 난 스스로에게 100점 만점에 16점 정도를 주고 있었다. 난 가족을 제외하곤 남에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는 일 없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이건 진짜다. 흔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는데, 난 초등학교때 부터 '차라리 웃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냥 무표정하면 그나마 쿨 해 보이기라도 하지, 웃으면 드라큘라를 연상시킨다나 뭐라나. 나더러 어쩌라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내 컴플렉스는 정말이지 절정에 달했다. '과 남자들 중에서 잘생인 애들'을 이야기하는 동기들이 내가 버젓이 옆에서 맥주를 까고 있는데도 마치 투명인간 인듯 취급하는 시츄에이션이나, 굳이 외모에 대한 대화를 할때 나를 거론하지 않는 주변의 분위기는 그때그때 표현은 안 했지만 좀 참담했다. 덤으로 스물 다섯을 넘기도록 여친 한 번 안 생기는 인생이다 보니 정말 외모에 관해선 즐거울 게 없었다.

 

포기가 빠르면, 노력도 없어지는 법이다. 난 항상 후줄근한 옷을 입고 다녔고, 패션이라는 건 옆 집 고양이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 대충 자르면 되지. 옷이야 잘 빨아서 냄새 안나면 되는거고. 어차피 내가 노력해 봐야 무관심이나 조롱 밖에 더 받겠어.

 

남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하고 부터, 내 삶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주는게 있으면 오는것도 있는 법이다. 주변사람들도 나를 (참 어거지로)칭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별 칭찬할 건덕지가 없으니 한 두 군데 장점으로 집중되기는 했다(그 증거로, 아직껏 내 헤어스타일을 칭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핫핫핫). 대부분이 내 몇 안되는 장점을 집요하게 추켜세웠다. 내가 키에 비에 좀 마르긴 했다. 그리고 이건 유전(?)인데, 걸음걸이가 빨라서 길에 나서면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편이다. 아, 피부는 트러블 자국 투성이인데 기본적인 색깔은 하얀 편이고. 이걸 '훤칠해 보인다' '걸음걸이가 자신감이 있어보인다'는 식으로 칭찬을 받으면, 솔직히 기분 나쁠거 하나 없다.

 

 나 스스로도 놀란 거지만, 칭찬을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 옷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에 어울린다는 셔츠 색깔을 고민하고, 기럭지가 좀 더 길어보일 만한 재킷과 바지를 찾게되고, 그 재킷에 맞는 구두도 좀 골라보고. 새 옷을 입고 학교를 가면 다시 덕담(?)을 들었다. 솔직히, 생전 첨 그런 칭찬을 들으니 참 기분 좋았다. 몇 주 뒤 다시 옷을 사러 갔다.


6. 외모는 정녕 '경쟁력'인가

 

명 연설 : <억울하면 다시 태어나라>

 

난 아직까지도 장동건씨를 100점으로 잡으면 17점 정도의 인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 삶의 문제점이거나 나를 괴롭히고 자포자기 상태로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막말로, 어쩌라고. 세상엔 잘 생긴 사람이 있다. 그것은 크나큰 재능이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혹은 발판삼아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좋은 현상이다(개인적으로 장동건씨 참 좋아한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난 얼굴 뜯어먹고 살 인간도 아니오, 그걸로 여러사람을 감동시켜서 사회를 밝게 만들만한 인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 가운데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잘 생긴 사람이 가진 재능이 있다면 난 내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밥 벌어 먹고 살만한 다른 재능 비슷한 걸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외모를 굳이 따지자면 난 세상 여러 여자 다 만족시켜줄 재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나 좋다는 여자 눈에 내가 마주앉아 밥먹다 식욕 상실할 만한 얼굴이 아니면 되는거다. 그런 여자가 끝까지 안 나타나면 결혼 안하면 되는 거고(... 이 경우엔 못하는 거지만). 난 150도 안되는 키(성인이다)에 만인이 추켜세울만한 미모도 없는 아가씨와도 밥 잘 먹고 술 잘 마셔봤다. 남의 집 귀한 딸이 시간 내서 나랑 밥 먹는다는데 고마워해야지 거기다 대고 니 키가 어떻고 얼굴이 어떻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루저 파동(?)의 '루저' 발언 부분은, 솔직히 난 별로 신경이 안 쓰였다. 지금껏 내 긴 글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이해가 되시겠지만, 그 아가씨가(혹은 작가분이) 내 외모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 사진을 보고 구토감을 느끼든 말든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난 그냥 나와 얼굴 마주대고 사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고 있는 지금 현실에 매우매우 만족하고 있고, 생활에 지장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외모에 관한 컴플렉스도 없다. 내가 진짜 신경이 쓰인 부분은, 저 발언 가운데 당연한 전제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키(외모)는 경쟁력이다'라는 부분이다.

 

 

  요즘 많이 본다

 

매우매우 제한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저 말은 사실이다. 준수한 외모가 인기의 원인인 연예인이나, 영업사원이나, 프레젠테이션 많이 하는 부서 직원이나... 그런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 정확한 비율은 제시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98%이상의 사람들에게, 외모는 정녕 '경쟁력'일까. 프레젠 때린 사원 외모가 준수해서 그 프로젝트 채택한 회사가 과연 잘 굴러갈까?

 

좋다. 백오십번 정도 양보해 드리지. 경쟁력이라 치자. 그게 '전 국민 누구나 다 만족할 만한 그림같은 외모'여야할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키가 작은 사람에겐 키가 작은 사람의 매력이 있는 거다. 키 작은 사람도 옷 입고 다닌다(180 이하는 벗어야 하나?). 그럼 그 사람들 입는 옷을 예쁘게 멋지게 차려입고 사진찍어서 광고할 키 작은 모델도 필요하겠네. 댁들은 다 키 크고 예쁘고 잘 생겼나? 안 그런 사람이 더 많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세일즈도 세상엔 필요하지 않나.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하자면 이건 진짜 코미디가 된다. 내가 일본에 있는 사이 한국의 민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직 일부일처제일게다. 한 명의 성인남성/여성은 한 명의 성인여성/남성과 결혼한다. 외모? 그 한 명의 마음에 들면 되는거다. 이건 무슨 수능의 병폐인지 왜 외모도 줄 세워서 예쁘고 잘 생긴 순서대로 좋은 결혼이 가능하다고 '믿는' 건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선, 외모는 그렇게 결정적인 경쟁력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첫인상이란 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사회생활이 잘 풀리리라 생각하는 허황된 망상은 마치 '스나이퍼 수준으로 사격을 잘 하면 군생활 편해져' 같은 얼빠진 일반화에 불과하다. 사격 잘 해서 군생활 핀 사병이 건군 이래 몇 백 명 정도 있을진 모르지만, 누구도 총 잘 쏘면 2년간 군생활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준수한 외모로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생이 성공할 가능성은 스코프 단 K2로 600m 전방의 목표물 저격했다고 조기전역을 할 가능성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외모로 득을 본다고 해도, 그 외의 부분에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 인생은 그냥 거기서 끝인거다. 외모 좀 딸려도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은 충분히 많고.

 

게다가, 외모라는 건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지극히 상대적인 거다. 왜 모든 한국인은 모든 한국인을 만족시킬 외모를 추구하기 위해 제 살을 자르고 뼈를 깍아야 하나(이게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게 참 끔찍하다만). 난 내 눈에 이뻐보이는 여자 찾아내면 죽어라 청혼해서 결혼 할 생각이다. 그 여자가 독자제위 가운데 99.98%의 눈에 추녀로 보여도 상관없다.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내 여자 이쁘다는데 댁들이 왜. 

 

7. 기나긴 글의 마무리

 

진짜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긴 글을 써 버렸다. 혹여 여기까지 다 읽어주신 분 계시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오늘의 내 결론.

 

외모 지상주의, 미의 승자독식이라는 규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탈피할 때가 되었다. '준수한 외모'라는 끔찍하게 상대적인 문제를 가지고 마치 온 국민이 동의하는 기준이 있다는 듯 쓸데없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나, 그에 현혹된 우리들이나, 다 헛 고생들 하고 있는 거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다 아름답다. 인간은 누구나 남과는 다르고, 그 차이 만으로도, 우주에 단 하나뿐이라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다. 이걸 왜 자로 재고 무게를 달아야 하나.

 


그대와 나는 아름답다. 처음엔 그냥 그렇게 믿어보라. 그리고, 주변을 칭찬해 보라. 그러면 어느샌가 깨닫게 될거다. 우리는 그냥 우리 자체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당장 지금부터 칭찬해 보자. 주변 사람들을, 가까운 친구들을. 너 그 옷 참 잘 어울린다고. 오늘은 어제보다 예뻐보인다고.

 

 그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

[딴지독투] 루저의 난, 소수 다수 드립, 그 풀리지 않는 오묘함


2009.11.17.화요일

딴지독투 Architect

 

루저의 난.. 난 이번 미수다의 종합적 발언사태에 대한 나를 포함 루저들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부르고 싶다.

뭐 그냥 이 말이 입에 붙는다.

 

뭐 전에쓴, 마녀사냥 드립에서 밝혔듯이, 난 미수다에 나와서 개념은 없었지만, 한국이란 사회의 단편을 처절할 정도로 까발린 차세대 골빈당 부녀회 회장 후보들 에겐 관심도 없다.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루저의 난이 자꾸 눈에 밟히는건, 아마 이 사건이 한국사회 전반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참 재미 있는 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수의 비판이 소수를 향해 몰아 칠때, 소수를 감싸주는 알흠다운 전통이 만들어 진거 같다. 아! 물론 소수를 존중 하고 보호하지 말자 라는 말이 아니다. 소수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단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이 다수가 어느덧 떼거리로 묘사되고, 다시 좀비 무뇌 폭도가 된다. 문제의 본질은 어느덧 저기 안드로메다로 넘어가 죄새끼 삽질에 묻혀버린다. 이것이 이상할 뿐이다.

 

 

 

 

한국사람 들이 이렇게 용서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 이었나,

뭐 교회가 넘치는 환경에 살고들 계시니 신의 은총과 성령이 가는 곳 마다 꽉 차서 그런걸까?

아니면 단순히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들 이었나,,

아니면 사건의본질이 흐려지길 원하는 불특정 소수 내지는 다수의 물타기 내지는, 본질흐려서 사건 묻어버리기에 모두들 너무나 익숙해 져 버렸나?

이런 물음이 떠오른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이나 1984를 읽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복되는 망각속에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그 사건이 어떤것 이었는 지 조차 잊어버리고, 부정확하고 옳바르지 않은 단어들의 유혹에 빠져, 망각하는.. 오로지 모두에게 공평한 물질적 평등이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그러다 퍼득, 머리속에 떠오른 의문,, 진정한 한국사회의 소수자들..

보호해야 할, 그리고 존중받아야할 소수자 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


미수다 에서 떠들어댄 그친구들 에 대한 변론에서 사용되는 소수의 의미는 두가지 이다.

 

첫째. 비난 과 열폭질에 개인 신상정보까지 까발리길 주저하지 않는 네티즌 이라는 무식한 루저 폭도들의 폭력에 노출된 가녀린 여대생 몇명 으로써의 소수...

 

둘째. 스펙과 자동차의 종류와, 아파트의 평수와 직업과 부모님의 지위와 통장의 잔고 등등에 연연하지 않는, 올곧고 굳건한 사회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 절대 대다수의 여성분들중, 어쩌다 피디 나 기획사와의 연줄로 미수다 라는 방송에 운좋게 나가서 자신들의 개인적 의견을 당차고도 솔직하고도 쿨하게 설파하신 극 소수의 된장 여인네들.. (여자들을 까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니 부디 글을 끝까지 읽어봐 주시길..영 기분이 나쁘시면 남 녀를 치환하셔도 상관 없음..)

 

이걸 파고들기 전에, 소수 와 다수 의 정의에 대해서 논해보자.

 

질 들루즈가 Mille Plateau 에서 되기 Devenir 라는 장에서 소수와 다수에 대해서 이바구를 푼 구절이 있다. 뭐 요점정리를 하자면..

 

소수와 다수의 진정한 정의는 통계학적 그리고 양적 의미로만 접근을 하게되면, 많은 혼란을 만들어 비뚤어진 인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위험한 단어들 이라는 것 이다.

 

소수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앞에서의 사진과 같은 용산참사의 피해자?

가정형편이 힘든 극빈층 아이들? 등등

 

맞다.. 이들은 소수자 들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것은, 이들이 소수자 인것은 그 양적 희귀성이 아닌, 권력의 부족 내지는 부재 이다.

정치적이던, 경재적이던,,,

 

그럼, 정치인들, 친일파들, 대기업의 이사진들, 부동산 투기 졸부들 하다못해 조폭들.. 이들은? 양적인 소수이다, 하지만 권력적 다수이다..

흔히들 이들을 기득권 이라 부르며, 특권층 화 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 특권층에 진입하기를 꿈꾸는, 또는 이런 기득권층 으로의 진입을 성공이라 정의해버리는 미디어 와 사회분위기 자체의 소비자들 이 있는 것을 볼때, 이들은 사실 양적으로도 잠정적인 다수자 들 이다.

마치 정치인 들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 상황하에 국민들의 권한을 이행받았다는 대의로써 권력적 절대 다수가 되듯이.

 


(300, 개인적으로 비호감 작품 다섯손가락 안 에 드는 졸작 이라 생각 되는 작품. 여기서 300의 주인공 스파르타인 들은 페르시아 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소수자의 이미지를 이용해, 그 저변에 숨어있는 역사적 왜곡을 통한 백인우월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 다수의 관객들을, 심지어는 동양인들 마져도. 몰입시켜버리는 전형적인 헐리웃식 최면 구조를 보여준다.)

 

자 그럼, 다수란 무엇인가?

 

여기 보여지는 수많은 잠정적 싱하횽아 들인가? 마치 중공군들이 인해전술로 휩쓸듯 지나가 듯이?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가? 이들이 다수자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이경우 오히려 이들은 권력적 소수자들 이다.. 수꼴들은 이들을  촛불좀비떼 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덧 우리에게 다수의 정치적 사회적 표현이 떼로 몰려다니는 불만 세력이 되버린 건가?

 

한국사회의 인식론적(?) 기저에는 다수 = 떼, 떼거리 라는 공식이존재하는 것 같다. 다구리, 떼씹, 떼강도,,촛불좀비떼.. 오히려 소수 특공단위로 날뛰는 수꼴 까스통 들에겐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다.. 법도 관대하고, 정치인들도 관대하고, 경찰들도 관대하고,, 시민들 까지도 관대하다.

에이.. 좀있다 뒈질것 들인데,,뭘..우리가 좀 참지.. 뭐 이용당하는 불쌍한 사람들 인데..등등

 

다수가 관련된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일들은, 그중 아주 극소수의 실수 ( 그것이 의도 되었던 의도되지 않았 던 간에)이라 하더라도, 어느덧 다수전체를 떼로 규정해 버린다. 그리곤 어느덧 이 다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적 소수성 마져도 철저히 밟고 망가트린다. 소수속에 숨어 있는 권력의 관계는 무시 되거나, 감지 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물리적 폭력이 앞서는 동물적 세상에서는, 양적으로는 다수가 소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복잡한 현실사회에선, 양적 소수 다수에 관계 없이, 권력적 다수 에서 권력적 소수로 폭력의 방향이 정해진다.

 

재미있는 일이다. 동시에 끔찍하기도 하다. 때리는 남자보다, 키작은 남자가 용서가 않된다니...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폭력적 그리고 권력적 가해자들을 동경하고, 오로지 겉모습으로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기에.

키가 작아 그러한 능력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은 찌질이가 되어버리고 루저가 되고 약자가 되어버렸을까?

효도르 횽아 한테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대씩 처맞는 것이 이상적인 삶일까?

 


이러니, 사대강 이니 세종시 수정 이니, 복지예산 감축이니 등등, 마치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나서 바꿔버릴듯 하지만, 결국은 쥐새끼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하고 있는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쥐새끼는 겉으로 보기에 혼자인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 폭력성에도 전혀 상관없이 아무러치 않게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있는한,,

또 그렇게 힘있고 잘나신 사람이 되는 것, 내지는 그런 사람과 동반하는 것이 어느덧 당연시여기게 된 사회로 볼때, 결국 다수인 것이다.

권력적 양적 다수. 어디에서든 당신을 보고 싶은 믿음직스럽고 닮고 싶은 얼굴의 Big Brother 처럼..

 


 

 

과연 이걸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에서?


모두들, 미디어 악법 반대를 외치며 들고 일어날 때가 엇 그제 인거 같은데, 그 모든 걸 잊은듯 해보이는 지금,,,

그당시 미디어 법이 왜 악법인지도 잊어버린거 아닐까?

미디어 라는 그 일방향성 매체의 성격에서 오는 조절되지 않을때 터져나올수 있는 근본적인 폭력성 에 대해서 다 잊어버린걸까?


새벽에 일어나 씻고 조깅하고, 출근전에 훑어 보는 한국의 신문과 웹싸이트들,, 모두들 난리가 나고, 당장 내일이라도 바꿔야 할듯 말하지만, 결국은 조용조용히 쥐들에 의해 계획되었던 데로 향해가는 한국 사회. 내가 한국사회를 잘 모르고 있던 걸까?

 

자. 다시 골빈녀들로 돌아가 보자.

 

첫번째의 소수자 로써의 골빈녀들.. 뭔가 이상하다..많이..

 

이들의 개인신상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비난이 몰리고 있다고 이사람들은 불쌍한 소수자라 하는데? 그리고 모든 네티즌 들을 폭도에 떼거리 찌질이라고 말하는데..

 

우선. 골빈녀들의 신상을 까발린것,, 이건 신상이 까발려진 사람과 신상을 까발린 사람, 그리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은 사람들에 대해 철저하게 사법적 처리가 우선되야 하고, 또한 거기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되고, 이런식의 무개념한 행동이 지양 되야 하는건 사회정의적 측면에서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이것이, 몇몇 무개념 개자식들에 의해,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저지른 일이라, 그 정체를 알수 없는 경우 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가 모든 넷 유저들을 네티즌 이라는 공동어로 묶어서 떼를 지어 찌질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인간들 이라 한번에 규정하고, 마치 이것이 바로 이 네티즌 들의 문제인양 호도하여 버리는건,, 요즘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시고 있는...

마녀사냥이란 단어의 역전적 이용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즉, 사회의 잘못된 구조에 의해 터진 문제를, 어느 개인의 불법적 개인정보 유출 행위를 이용해서 네티즌 이라는 불특정 한 단어로 싸잡아 매도하고, 본질을 넘겨버리는 것...

 

교회권력(사회구조) 의 통제가 불가능하거나 힘든 역병(개인정보 유출)을 이용해서 권력적 소수자 (넷유저, 루저, 찌질이 등등) 를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마녀(네티즌)로 만들어 규탄하고, 불태워버리고 사건을 묻는다..

 

오히려 정당한 이유로 비판을 하는 이시대의 루저들이 네티즌이란

이름으로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또하나의 문제는, 마치 몇몇 여자애 들의 실수,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들어 비난과 비판을 하는것은 찌질이 떼 들이나 몰려다니며 하는 짓 이다,, 라고 말 하는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여기 딴지일보, 다음 아고라, 한겨레, 경향...등등 수많은 인터넷 싸이트에 하루에도 수만명이 쥐새끼의 정치에 대해 불만과 비판과 비난을 표현하는데? 그럼 이건 뭔가? 이거 역시 떼로 몰려다니며 쥐새끼 하나 놓고 떼거리로 폭도짓을 하는것 인가?

 

아! 쥐새끼가 하는건 한나라의 살림이고, 저 가녀린 아녀자들의 말은 그저 개인적 생각이다? 그래서 다르다?

 

별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하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루저들이 열폭을 하는 대상에 대한 것 이다.

 

이 골빈아이들을 말실수한 소수로 놓고, 변호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가장 큰것이, 마치 모든 루저가 미수다에 나온 그 골빈대생들을 상대로 열폭을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이다.

 

루저들은 이 여자들을 직접적 대상으로 놓고 열폭을 하는 것 이 아니다.

만약 그런경우라면, 해당 대학교에 가서 잠복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여기저기서 현피떳다는 소식들이 무궁무진 하게 나와야 한다.

몇몇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단정하는 것 처럼, 루저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광기의 마초 폭력배 들이 아니란 것 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상인가?

 

그건 바로, 티비라는 일방적이며 권력적 매체에 출현해 인간과 사회를 재정의 해버리는 무서운 말들을 서슴치 않고 쏘쿨하게 내뱉은 이 여자아이들의 이미지 이다. 이 이미지들 자체가 미디어를 통해 투영되고 있는 사회의 이미지 와 겹쳐진 것 이며,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에 기분 나빠하고 설마 하며, 믿고있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확인사살 된 것 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큰것이다.

저 골빈녀들이 명동한복판에 모여서 명품과 키와 조건에 대해 떠들었다면..어떤일이 일어났을까? 뭐 .. 열받아서 따귀한대 때릴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미친년들~ 욕한마디 침한번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그냥 속으로...

 

이 상황에서 이사람들은 매체적 생산자들의 일부로써의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냥 꽃꼿은 썪은 된장정도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뭐 실제로도 꽤많은 사람들이 별다방 콩다방에서 오손도손 모여앉아 이러한 주제로 일상다반사 이바구를 까고 계신 한국사회에서,, 뭐 별다방 콩다방에서 살인사건 이니 폭행사건 일어 났다, 라는 말은 금시초문 이다.

 

그러나 티비라는 매체에서 이들이 이러한 발언을 아주 당당하게 선언하듯이 입 밖으로 내 뱉은 순간, 이것은 하나의 선언적 의미를 지니게 되고, 또한 한 사회의 현위치에 대한 확인이 되는 것 이다.

 

이 방송을 편집한 피디의 변론에도 써있듯이, 이들은 당당하게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 들을 대표하기 위해 나온것 이고, 아마도 피디 역시 이 정도 내용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편집없이 방송에 내보냈을 것 이다.

아니면 더 복잡한 의도가 있을 수도 있고.

 

여하튼, 루저들은 아무생각 없이 한국말 하는 서양녀들 얼굴 구경하다가,당신을 루저 라는 판정을 받아버린 것 이다. 마치, 옆모습을 따라 만든 판떼기 하나 얼굴에 맞추어 보고, 너는 유태인 이라 까스실 행~ 하는 것 처럼.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 인가?


다음은 두번째,, 이런 아해들은 지극히 소수 일 뿐이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 드립이다..

 

뭐 맞는 말일 것 이다.

 

중요한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과연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주도해 가는 권력적 다수자 이냐? 라는 문제이다. 이건 전적으로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뭐 별로 할말도 없다... 그림을 보시라..

 


김진홍.. 자신이 뉴라이트를 만들어 쥐새끼 대똥 만들어 줬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인간말종이다. 이넘 말고도 많다.

목사니 전도사니 권사니.. 성폭행에 금품갈취에.. 살인에 간통에..

 

문제에 대해, 수도 없이 성토하고 비판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소수일뿐 이다. 기독교를 싸잡아 욕하지 말아라. 너희야 말로 피해망상에 정신이상 아니냐? 지옥가라~! 드립 일 뿐이다.

 

문제는, 저사람들의 수가 아니다. 저사람들의 수가 양적 소수자 일지는 판단할 방법이 없지만. 중요한건 이들은 어째튼, 한국 사회에 있어서 사회적 분위기 (그것이 나쁜쪽이던 좋은쪽이던) 를 만들고 조정하는 권력적 다수자 들이다. 저들의 손짓 한번에 뒤로 넘어가는 신도들이 주말마다 교회에 꽉꽉 들어찬다. 이들은 여전히 소수인가?

 


자 다시한번 묻게된다. 우린 여전히 저 골빈녀들이 이 사회의 극소수자 이다! 라고 아무 숙고없이 말할 수 있을까?

 

몇몇의 투자전문가, 내지는 투자에 도가튼 연애인들을 따라잡으려,아파트 투기에 뛰어들었다 빼도박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 만명을 넘는 이사회에서.. 영어가 스펙을 올려주는 지름길 인것 마냥, 조기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설파 하자 마자, 맹목적으로 아이들을 유학보네고.. 연예인들 수술자국 찾으면서 뒷다마 까다가도, 방학만 되면 얼굴이 달라져 오는 누님들이 부지기수인 이 한국사회에서.. 빠리에서 8년을 살았던 나도, 두세번 그저 일때문에 지나가 봤던, 셩젤리제의 루이뷔똥 매장에 바깥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100유로도 서슴없이 꺼내며, 지나가는 한국인 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신 줄서기 알바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한국 사회에서.. 정말 이들이 소수일까?

 

루저의 난으로 말하고 싶은 건, 루저들의 난이 뭐 저런 골빈당 부녀회장 후보 들 개개인에 대한 비판보다 더욱더 사회깊숙히 존재하는 구조적 불안정에 근거한다 라는 것 이다.

 

말로는 다들, 좆같다, 갈아치우자 마고 말들은 하지만, 정작 이런 것에 홀려버린 사회.


권력적 소수자인 다수자 들이 권력적 다수자인 극소수의 삶을 꿈꾸고, 거기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사회.

 

그리고 그들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회.

 

그래서, 바로 그걸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급기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 그 소수자 들이 사용하는 잘못된 용어들과 변질된 의미를 통한 본질의 호도 방식을, 어느덧 자발적으로따라하게 되는 사회.

 

아마 루저의 난은 바로 이러한 사회, 쥐새끼가 딴나라당이 친일파 들이 개판을 치고, 자신들 마음데로 다 하지만, 그저 속으로, 아니면 인터넷에 모여서 욕한번 하고는, 은밀히 가슴깊숙히 에선 저런 삶을 동경하는 그런 사회에 대한 열폭이 아닐까?

 


이미 이런저런 사건으로 여러번 터졌지만, 이러한 "그들의" 논리에 따라 자체정화되고, 그러면서 쌓인 불만들이, 고용 불안정의 세대. 자식을 만들기 무서워진 사회, 수천만원 빛져서 88만원을 벌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가 불안정한 사회의 공포와 함께, 동시에 터진건 아닐까?

 


과연, 이사건이 진정한 사회적 숙고로 넘어가지 않고, 또 흐지부지 되면 과연 어떤일 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동안 수많은 사회적 부조리에 의한 사건들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터졌는데. 결국은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열폭질이라고 네티즌에 의한 자체적 결론이 지어져, 결국은 일말의 사회적 숙고와 변화에 대한 생각 조차 없이, 그저 개인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할 문제란 식으로 흐지부지되었는데..

 

이제 조만간 본격적인, 우리들이 서로 앞서 만들고 이름지어 버린 "열폭 네티즌 찌질이들"에 대한 단속을 정부에서 외치게 되지 않을까? 국민들이 알아서 단속하고 자체정화 할  정도니, 우린 국민의 의견, 여론에 따라 인터넷 제한법을 상정하겠소이다~~ 라며

 

진정으로 딴나라와 쥐새끼의 집권을 이번으로 종치고 싶은 혁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사회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제대로 깊숙히 파고들어, 어느새, 우리들의 저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고, 저들의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살았는지,,반성하는 기회이자.

잘못된 언어의 사용과, 의미의 변질을 통한 사회적 반성에 대한 무력화 시도를 철저히 깨버리고, 보다 깊은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거..

 

그것이 네티즌들을 한데 몰아 마녀사냥 해버리고, 루저를 대량생산 하는 이정권에 대한 제대로된 개혁의 시작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뭐 이건 그저 몇몇 된장들에대해, 피해망상이 발동되신, 그야말로 루저들의 떼발광 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지만, 난 적어도 루저의 난을 이렇게 보게된다...

 

<루저바라>

 

[독투] 루저사태 단상


2009. 11. 12. 목요일

딴지독투 킨트

                                           


11. 23. 문제의 "미수다독트린"

1. 

한순간에 패배자(Loser)가 되버렸습니다.

그녀는 그 예쁘장한 얼굴로 단칼에 이 세상에 키 180이하의 남자들 모두를 인생의 패배자로 낙인찍어 버렸죠.

이 날 미수다의 충격적 주인공이었던 마녀3인방(이모양, 최모양, 문모양)의
발언들은 일파만파로 퍼져갔고...

생각보다 파장은 깊고 두텁습니다.


2.


근데 사실 좀 극단적이고 개념 없이 말해서 그렇지... 

우리 모두 다 알고있는 얘기아닐까요? 

훤칠한 키에 몸매 야리야리하고 얼굴도 예쁜데다가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여자가 교통카드 찍으며 부지런히 대중교통 이용하고, 그닥 특별하지도 않은 외모에, 미래도 불투명하고, 금상첨화 돈까지 없는 남자는 안만난다는거....

다 알고 있잖아요? 힛.


확실히 솔직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들도 고충은 있습니다. 

매일 아무리 귀찮아도 샴푸에 린스에 트리트먼트까지 꼭 해줘야 하고, 뭘 입어도 좀 부티나고 태 나는 옷 입어야 좀 있어보이고, 거기에 명품반열에 올라있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절대로 입을 수 없을것 같은 의복을 입어야 자신감이 생기고, 메이크업 하지 않고서는 동네 앞 편의점에 아이스크림하나 사러갈 수 없고...

남들 삼겹살에 소주 먹을때 필라테스며 요가나 하며 있어야하고,

돈 좀 생기면 병원으로 달려가 눈 코 입 얼굴윤곽 피부 지방 가슴 장딴지등등... 의학과 금전이 허락하는한 최대한으로 보정을 하려하고....


그리고 이러한 그녀들의 고충은 결국 자기자신을 위한 겁니다.

그 자기 자신의 목적은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하나의 job을 갖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품가치를 올려서 더 나은 조건의 남자들과 짝짓기를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귀찮은 일상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그녀들의 필연적인 고충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녀들을 보고 예쁘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3.

우리 사회에서 결혼시장이라는건  꽤나 달콤하고 먹음직스러운 거대한 시장입니다.


가끔 지하철 역내 광고칸이나 인터넷 배너로 보이는 "결혼해 쥬오ㅡㅡ;". 

그곳이 미혼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나름 정교한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남자들은 재력과 학벌, 직업이 제일의 평가기준이고, 여자들은 외모가 제일의 평가기준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중엔 과연 몇분이나 1등급이실줄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그곳을 통해 결혼하셔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시는 분들을 폄하할 생각도 아닙니다만, 분명... 짝짓기는 이제 거대한 비즈니스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성이 상품이 되버린 세상이죠.

 

                                                      넌 몇등급이니?


그런 의미에서 그 여인들은 자신들을 최고급 상품으로 만들기를 원했고, 이미 어느 정도 최고급 상품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신했던 그녀들은 '나'라는 상품을 가지기 위해서는 너희들도 어느 정도는 되어줘야되지 않겠니...라고 생각했던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는 그리 놀라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 알고 있는 얘기죠.


4.

참으로 딱한건, 자신들의 상품가치는 그렇게 열올리며 올릴 줄 알았던 그녀들이 정작 자신들의 나이와 학벌에 맞는 상식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속내를 사적인 공간에서 드러내는 것과 공적인 공간에서의 발언하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오히려 자신들의 생각이 상식적으로 부끄러운 생각이라는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쿨하다고 여기는 비상식적인 행태.

저게 정말 대학생인가 싶을 정도의...
 
학생이 핸드백만 들고 다니면 도대체 책은 언제본다는 건지... 학생이 가방이 작아 책이 다 안들어가서 손으로 들고다닌다는 게 개념있다라고 칭찬받는 아이러니...

(그 S대 여학생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그 여학생들과비교되다보니 그게 엄청난 개념학생의 언행으로 보여진다는게 신기해서 그럽니다.오해없으시길....헤...)


그 예쁘장한 아가씨들의 그 놀라운 철없음이 정말 아연합니다.


5.

그래도 이건 아니다싶습니다.


분개할 수 있습니다. 분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단 하룻밤만에 몸뚱이만 빼고 다 벌거벗겨졌더군요.

죄 없는 여자를 몰아세우는 것이 마녀사냥이지,
죄 있는 여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마녀사냥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죄가 큰 여자여도 우리가 그런식으로 징벌을 내릴 권리는 없습니다.
철딱서니가 없어서 막말을 좀 하고, 그리고 그말이 그렇게 분에 겨워도 우리가 그녀를 마녀로 몰아 광장에 세워 처형할 권리는 없습니다.


저도 루저고.... 심지어 솔로고.... 그렇긴합니다만. 그래도 그 방송보면서 별로 화는 안나더군요.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니까요. 다만 저런 얘기를 방송에서 보여주는... 그 무모하다싶은 용감함은 경이롭더군요.


6. 

제가 짜증나는건 그 철없는 아가씨보다 KBS입니다.

대본대로 말을 한거네 안한거네는 논외로 하고. 최소한 방송준비할 때 무슨 얘기할찌 뻔히 정했을텐데...

그렇다면 그 아가씨들이 그런 취지로 발언을 할것을 당연히 알았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과없이 그 발언이 터져나오게 했으며, 또 그걸 편집조차도 거치지 않고 자막까지 덧칠해서 방송을 타게 한건지...


전 그 아가씨들의 철딱서니 없음보다 제작진의 안일함이 더 어처구니 없고 화가 나더군요.

차라리 케이블의 금성인바이러스나 때밀지를 보고말지....


매달 꼬박꼬박 2,500원씩 꼬불쳐가는 국영방송(사실...이젠 공영방송이라 보기에는...;;)치고는 매우 저질스런 편성이었습니다.


7. 

사람들이 화 좀 내다가 끝날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여파가 깊고 오래남는 거 같습니다. 

뭐..인터넷문화의 익명성과 가학성이 어쩌구하며 떠들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한 사람의 최소한의 인권정도는 지켜주는게 도리입니다.


추악한 개인일지라도...
우리가 화나 많이 났어도...
우리가 그녀를 단죄할 수는 있어도, 
형벌까지 내려선 안되지 않겠나싶습니다.



딴지독투 킨트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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