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그 시절엔 애 어른 할것 없이,
검정 고무신을 신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것 없이 늘 검정고무신
한 켤레면 족하였고 어쩌다 운동화 한 켤레를 얻는 날엔
닳는 것이 아까워서 벗어 들고 다니던 놈의
이야기가 회자되곤 하였었다.
어느해 가을 이었다.
청주에 있는 한벌국민학교와 우리 학교가
자매결연이란걸 맺었었다.
그 무렵에 지금의 동화학교 교가란 걸 당시 교대부속국민학교 선생이 만들어 주었으니
내가 2~3학년 무렵인것 같다.
아무튼 우리학교에서는 싸리비며 청소도구를 한아름(직접 만든게 아니고 시장에서 사서)
그 학교에 보내었고, 시내학교에서는 운동기구를 한아름 우리 학교에 보내왔다.
지금 처럼 가죽으로 된 근사한 축구공은 아니었고
고무로 만들어 거죽에 5각형 그림을 검게 채색한...
어쨌던 동네 잔치에서 잡도리한 돼지 오줌보나 얻어서 걷어차던 당시의 우리들에겐
고무공의 위력은 대단했었다.
검정고무신을 골대 뒤에 주욱 벗어 놓고 맨발로 공을 차곤했었다.
맨발로 걷어 차던 고무공의 반발력은 의외로 좋았고 촉감도 참 좋았었다.
맨날 옷 찢어 먹으며 진돌이나 오징어가이생이나 하던 당시의 우리들에게
축구공은 우릴 작은 펠레도, 자일징요도, 에우제비오도 가능케했다.
그러다가 교육청에 근무하던 작은 아버지께 제대로 된 가죽 축구공을 선물 받았고
신주단지 모시듯 학교에 들고 다니며 시간만 나면 맨발로 공을 차곤하며 놀았다.
그 해 가을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가에 기와집이 한 채있었고
그끝에 노현네집, 그 다음에 한순이네 집이 있었다.
우리 1년 후배이던 한 머라는 계집에네 집도 거기쯤 있었는데 그집 사랑채
추녀밑에 커다란 바다리집이 매어 달려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그 집 앞을 막 지나려는데 무언가 따끔하더니 머릿속이 산득한게
한기가 느껴졌다. 정신없이 냅다 뛰는 밖에....
벌떼의 습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기서 백 미터는 떨어진 한순이네 집 앞이었고
내 머리통이며 얼굴은 벌에 쏘여 벌써 주먹만하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먼저 집으로 가던 아이놈들이 벌집을 들 쑤셔 놓았던 거고
멋 모르고 지나가던 나를 벌들이 융단 폭격한 것이었다.
울고 불고 하는 내게 한순이 엄마가 된장을 한 바가지 들고 오셔서
머리며 얼굴에 바르고 문질러 주시는 동안 난 그저
속절 없이 퍼질러 앉아 울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이들었을 때의 내 몰골을 누군가 보았다면~
문제는 그 뒤였다.
내 발에 있어야 할 검정고무신은 온데 간데 없고
애지중지하던 축구공 또한 종적이 묘연했다.
어깨에 각개로 질끈 동여멘 책보따리가 무사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후 그 집앞에 다시 갔지만 신발도
축구공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필시 남계나 방죽골, 아니면 장자골로 가는 누군가가
챙겨간 듯했다.
그 시절이란 길에서 다 떨어진 고무신짝도 거둬 가던 시절이었었다.
집에 가서 내 몰골을 보며 한숨지던 어머님의 모습이 어제런듯 생생하다.
아버지께선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셔서는 저녁에 내가 잠들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께서 내게 검정 고무신 한 켤레와
당시엔 구해 보기 어렵던 "어깨동무"잡지 한 권을 내미셨다.
운동화는 이담에 사 주시마하시며...
그 후로 매달 그 잡지를 정기 구독하게 해 주셨으니
아버진 당시로서도 매우 세련된 분이셨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시장에 다녀 오시며 내 아들녀석에게
파란 고무신을 사다 주셨다.
파란 바탕에 금색 반짝이가 아로 새겨진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이쁜 고무신이었다.
그 고무신을 지금은 잘 닦아 TV장식장 위에 놓아 두었다.
내가 어릴때 신던 고무신은 더 대단했었다고 생각된다.
자동차 바퀴가 그려지고 왕자표에, 진짜, 국제고무였으니까~
요즘에도 여자애들은 고무신을 신는단다.
때론 그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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