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 할머니께서 산이 되시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잊지 아니하시고,
늘 교회에 나가고, 말없이 자식들만을 바라보시던 노 할머니께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엊그제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할아버지와 나란히,
큰 아들 곁에 묻히셨습니다.
6,25 동란 중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과 두 사위를 앞세우고 그렇게 모진 삶을 사시다가
폭염속에 산이 되셨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56년을 사시면서,
어쩌면 좋은 날보다는 궂은 날이 더 많았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오고, 콧날 시큰한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아내와 내가 결혼하였을 때,
손녀에게 선물하시려고 콩밭 매는 품을 팔아 괴산의 전통 교잣상을 장만해 주신
그 할머니...
그 상으로 우린 아버지 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모이면 다 같이 식사를 하곤합니다.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집들이할 때에 친구들이 젓가락 장단치어 벗겨진 가장자리만 빼곤,
아직도 튼튼하고 은은한 상의 칠이 할머니를 생각하게 합니다.
손주 사위 먹이려고 앞 강에서 다슬기(올갱이)를 잡아
올갱이 해장국을 끓여 주시던 그 할머니...
처가에 들리면 우리 어머니 건강과 안위를 먼저 걱정 해 주시던 그 할머니...
언제든 이탄 처가 대문을 열면,
사우 왔네~ 하시며 맞아 주실 것만 같은 그 할머니...
큰 아들을 일찍 잃고도 의연하셨던 그 할머니께서,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리시고 쇠잔해져 간것은 둘째 아들을 앞 세운 직후 부터입니다.
군대가서 정신세계에 문제를 일으킨 둘째 아들이 어머니와, 처 자식을 나 몰라라
목숨을 버리었고, 그 장례식날...
상여가 집을 떠난 후...집에 놓고 온 무언가를 가지러 집에 들렀을 때...
빈집에서...아이처럼 울며, 몸부림치던 할머니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할머니 장레식을 마치고,
다들 삶의 현장으로 떠나가고 다시 하루가 갑니다.
사무실 창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 보다가,
처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이 척박한 땅, 한반도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였듯이,
가부장적이고 또 꼴같잖고, 어줍잖은 마초의 세상,
그 그늘을 처절히 살다 가신 할머니 얼굴에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옵니다.
내 육신의 어머니와 사랑한다고 늘 주워 섬기는 아내에게,
나는 시방,
잘 하고 있는겨?
자문해보고,
반성해야하는 까닭입니다....
괴산...
처가에 가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할머니가 떠오르고, 그리울 것입니다...
"사우왔어...사둔은? 건강하셔?"
그 할머니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하느님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의 고단했고 아팠으며,
슬펐을 모든 것을 위로받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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