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별별 이야기^^

방죽골 여영이...내 기억에의 조사(弔詞)

-검은배- 2009. 8. 21. 15:16

 

 

꽃비가 소리없이 내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온통...

 

창 밖으로 밀려드는 저녁 안개를 바라다 보노라니,

외롭다는 생각이 불현듯 밀려든다.적막강산에 나만 버려진듯하다.

사무실 앞 성당 마당에 노란 개나리, 보랏빛 라일락 꽃잎이며,

알록달록 고운 꽃잎들이 봄 바람에 이리저리 떼밀려 어지럽게 굴러다닌다.

2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니... 참 곱다느껴진다.

내일이면 성당에 매일 미사 오시는 등 굽은 할머니들이

빗자루 들고 한참을 청소 해야 할 듯하다.

유난히 짧았던 봄을 반추해 보노라니, 광고 카피 한 줄이 떠오른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 했던가?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은 없고, 남는 건 추억 뿐인 것처럼~!!

 

어릴적 방죽골에 여영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우리 큰 누나보다 더 나이를 먹었으니, 살아있다면 예순가까이 되었지싶은데,

동네에선 애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방죽골 여영이라고 불렀었다.

자그마하고 아담한 키에, 작고 나름 귀여운 얼굴, 마시마로 캐릭터처럼 눈 꼬리가 처진...

 

문제는 머리에 꽃(?)을 늘 꼽고 있었다는 거다.

 

눈치채셨거나, 감 땄겠지만, 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었다. 이리저리 동네를 돌아 다니다가,

때 되어 밥이라도 주면 얻어 먹고, 아이도 보아 주고...

 

언젠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저녁이 늦어 어둠이 내리는데,

그녀가 우리집 추녀 밑에 떨고 서 있었다.

어머니께서 불러 들여 같이 저녁을 먹이고, 누나들과 놀다가 밤이 깊어,

아버지께서 방죽골가는 여우고개 너머까지  데려다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남의 손금을 아주 잘 보아주었었다.

저녁을 먹고 우리 가족들과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그녀가 손금을 봐 준다기에 손을 내밀었었다.

손금은 안보고 내 얼굴만 빤히 바라보면서 손만 만지작 거리더니,

너는 오래 살거고, 딸만 셋 낳을거라 했다. 손금이 아닌 관상을 본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들만 셋을 낳았으니 영빨은 영~ 아닌거 같고,

오래 산다한 것도 틀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이풍진 세상~ 오래 살면 또 뭐하랴만~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녀는 운전수며 돌꽝 인부등 별 잡것들 손을 잡고

이리저리 뒤치락 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녀를 볼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오늘처럼 꽃비가 내리던 봄날 저녁,

그녀는 자기를 쏘옥~ 빼어 닮은 계집아이를 데리고 우리 동네에 나타났었다.

어머니가 저녁을 챙겨 주시자, 모녀는 얼마나 시장했던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었다.

어머니가 취조하는 정보과 형사처럼, 애 애비가 누구냐? 어디사는 놈이고 뭐하는 놈이냐?

별별것을 다 물으셨지만. "이년 팔자가 박복해서 그려유~" 소리만을 독백처럼 나즈막히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나타난 그들 모녀를 가끔 동네 언저리나 화당에서 볼 수 있었다.

필시, 그렇게 떠돌아 다니다 어느 못된 작자에게 몹쓸 짓을 당해 혹을 달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어른들은 혀를 끌끌찼었다.

 

그 후로 다시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지금껏~어디선가 나름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꽃비가 땅거미와 함께 소리없이 내리는 저녁, 쌩뚱맞게 왜 그녀를 생각했지?

 

이러다가 나도, 머리에 꽃이라도 꼽아야 하는건 아닌지?

한숨만큼 길어진 하루를 보내며 유년의 기억 저편에서 길어올린

전설같은 기억하나~!!

 

 

 

                        이 필원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