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별별 이야기^^

까막눈 하느님 - 전동균

-검은배- 2011. 8. 11. 04:16

 

 

 

 

까막눈 하느님 / 전동균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산비탈 밭에 나와 이슬 털며 깨단 묶는

회촌마을 강씨 영감,

성경 한 줄 못 읽는 까막눈이지만

주일이면 새 옷 갈아입고

경운기 몰고

시오리 밖 흥업공소에 미사 드리러 간다네

꾸벅꾸벅 졸다 깨다

미사 끝나면

사거리 옴팍집 손두부 막걸리를

하느님께 올린다네

아직은 쓸 만한 몸뚱아리

농투성이 하느님께 한 잔,

만득이 외아들 시퍼런 못물 속으로 데리고 간

똥강아지 하느님께 한 잔,

모 심을 땐 참꽃 같고

추수할 땐 개좆 같은

세상에게도 한 잔....

그러다가 투덜투덜 투덜대는

경운기 짐칸에 실려

돌아온다네

 

 

전동균의 「까막눈 하느님」을 배달하며

 

중세의 수도원에는 독특한 기도법을 지닌 수사들이 있었다고 해요. 베르나르도 수사는 뒷동산을 돌면서

열심히 뛰는 것이 기도였고, 마세오 수사는 “우-우-우-우-”라는 모음을 연이어 발음하는 것이 기도였지요. 이 시의 회촌마을 강씨 영감님에게는 옴팍집 손부두 막걸리를 맛있게 드시는 것이 기도였군요.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게 목마른 몸이 올릴 수 있는 가장 절실한 기도인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이 지금 한국에 오신다면 십자가 대신 똥짐을 지실지도 모른다”는 권정생 선생의 말씀처럼,

농부는 몸과 영혼을 두루 살리는 일꾼이지요. 그러니 농부의 한숨과 중얼거림, 새벽에 이슬 젖은 깨단을

묶는 노동도 일종의 기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나희덕 -

 

 

 

몇 줌 시린 햇볕에도 / 전동균

 

지난밤 바람이 몹시 불더니, 하느님이 다녀가셨는가?

옆집에 마실 오듯 슬쩍 다녀가셨는가?

 

이파리들 다 떨구고

차마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떠꺼머리총각처럼 서 있는 저 감나무

몇 줌 시린 햇볕에도

한없이 떨며 깊어지는

극빈의 그늘 속에

 

새소리, 새소리들

발목 붉은 새 울음소리들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맑고 높게

반짝이고 있으니

 

이런 날 내 공부는

경전이고 나발이고 읽던 책 탁 덮고

밖으로 나가

빨랫줄에 빨래를 널거나 마당을 쓸거나 아니면 빈둥빈둥 구름을 쳐다보며

눈 밑 점이 이쁜

한 사람을 생각하거나!

 

 

 

 

전동균

 

1962년 경주 출생. 199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 시집 『함허동천에 서성이다』『거룩한 허기』등.

현재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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