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 가을이 무르익는 요즘 아침, 출근하느라 내수를 지나 증평을 향하는 구름다리 위로 접어들며 그 친구를 매일 만납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지방정부의 혈세탕진하기...멀쩡한 다릿발 땜질하기...그 낭비의 공사장... 노랑색, 형광 작업복에 안전모를 눌러쓰고 한 손엔 붉은 手旗를 들고...흔드는...쉼없이 깃발을 흔드는... 마네킹...
차량용 DC 24 Volt 배터리를 다리 사이에 끼고 ... 쉬지 않고 열심히 깃발을 흔들며, 출근길 조바심에 짜증을 더하는마네킹을 말입니다. 나는오늘도 녀석의 깃발 신호에 순응하여 한 차로를 서행하며 곁눈질로 표정없는 녀석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녀석도 어느 명품 매장 앞에 서 선남선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을까요? 표정없는 얼굴이지만 깃발을 흔드는 관절의 움직임만큼이나 왠지 어색해 보이는 건 내 마음 한끝, 부자연 탓 때문일까요? 도로공사장, 노가다판 단순노무이긴하지만 녀석은 지금, 한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겁니다. 한 가정의 작은 행복을 앗아 간 겁니다. 한 가장에게 쓴 소줏잔을 떠 안기고 있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휘호가 아로새겨진 술잔. "처음처럼~!!!" ..........
그리하여 오늘 저녁 어느 무기력한 가장 하나는 마네킹만도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쓰린 속에 쓰디쓴 소주 한잔을 쓸어 넣으며 "개나발!"을 찾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가을이 무르익어 가는데, 이런 세속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녀석은 오늘도 표정없는 얼굴로,멜라민으로 세상을 공포 속에 밀어넣은 중국의...五星紅旗보다 더 붉은 깃발을 쉼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먹먹한 내 가슴을짓누르며,내 속에 납덩어리 하나를더하고 있습니다. 구름다리 아래 볏논들이 어느새 황금물결로 다가옵니다. 마네킹의 오똑한 콧날을 스치고 고추 잠자리 한마리 맴돌아 납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갑니다.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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