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별별 이야기^^

어린아이처럼...

-검은배- 2011. 2. 26. 07:00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마르코 10,13-16

 

사랑을 독차지 하던 나에게

어린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 그 이별의 슬픔은 가히 패닉 - 이었던 기억.

신부님께서 오셔서 공소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소태골 선산까지 이어지던 장례행렬을 기억한다.

상여 뒤를 십여미터는 도열한 만장 행렬이 이어지고,

마을 사람들과 성당신자분들이  연도를 하며 뒤를 따랐었다.

작은 개울이나 야트막한 고개라도 나올라치면 어김없이 상여가 멈추었고,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소탈한 상을 차리고, 순서대로 절을 하고, 상두꾼들에게 봉투를 건네고...

마치 이 청준의 소설, 축제- 그 장면들이었었다.

그때에 나는 "연령 강 베드루" "연령 배 마리아"라고 적힌 나무 십자가를 들고 행렬의 맨 앞을 서서 갔는데,

그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장의 행렬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었다.

 

친구 덕보녀석이 있었는데, 상복 두루마기를 입고 나무 십자가를 든 내 모습이 생경스러웠는지

여름날, 등 위에 맴돌며 귀찮게 하는 파리마냥 졸졸 따라오며 성가시게 했었다.

"영규야, 너 왜 그런 옷을 입었어? 그 막대기는 왜 들고 가는겨?"

"몰라 새끼야! 저리가!  저리꺼져 새끼야! 너 학교가면 나한테 뒤졌어!"

나의 협박에 녀석은 저만치 떨어졌지만, 계속해서 행렬을 따르며 내 신경을 온통 거슬리게 했는데,

나야 상주니까 학교를 못간거지만 그때 그 녀석은 도대체 왜 학교를 안 간 건지, 지금도 그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아무튼 할아버지 상을 치르고 학교에 가서 덕보 녀석을 응징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했다면 주머니 칼을 뺏었거나, 급식 빵을 두어 번 빼앗아 먹었겠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십 여 일 뒤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난 또 다시  장의 행렬을 선도 해야 했었다.

할머니 장례식 땐 흑비가 내렸었다. 부연 안개와 황사가 어찌나 심한지 하얀 상복이 누르께하니 황톳물이 들었었다.

 

장례를 마치고 우리 마당에선 수고하신 동네 어른들을 위한 작은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푸짐하게 음식을 나누고 술을 따르고... 거기다가 작은 음악회까지 열렸었다.

이를테면 동네 마름들의 잔칫날이었던 셈이다.

천주교 집안인 우리집은 그 시절에도 참 개방적이고 쿨 했었던 것이리라.

 

효영이네 머슴 길준이가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을 참 구성지게 불렀었다.

그에질세라 득환네 머슴 춘돌이가 김 추자의 "늦기 전에"를  감정이입까지 해 가며

열창을 했었던 기억...그러자 레파토리를 춘돌이에게 네다바이당한 길준이가 다시

김추자의 "늦기 전에"를 열창했었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그 공연의 MC가 상주인 내 아버지 였었다는 거.

 

모임이 끝날 무렵, 아버지가 참 당신답게 길준이에게 "마침기도"를 하라고 하셨고,

개신교 신자였던 길준이가 기다렸다는 듯, 장황하게 "기도"라는 걸 했는데,

아무튼 우리집과 가족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중언, 부언, 첨언에 부연설명까지...

족히 한 5분  정도는 했었고, 기도가 끝나자 마당 가득 마을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

"아멘" 대신 '라~면!"이라고 화답해서 웃음바다가 되는 것으로  할머니 장례를 마무리 했었다.

그 때 그 길준이의 기도내용과 똑 같은 기도내용과 모습을 오랜 뒤에 tv로 보고 뿜었는데,

약간 까진 머리와 묘하게 튀어 나온 얍사브리한 입술, 지그시 감은듯한 눈매와 선동적인 목소리와 강세...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에서 "축도"라는 걸 하는 여의도 교회의 조모 목사 -영락없는 길준이 였다. -

둘 중 누가 누구를 벤치마킹한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정말 궁금한 건, 전기도 tv도 없던 그 시절에 길준이가 어떻게 그런 기도란 걸 했었던 건지...

 

춘돌이는 몇 해 전에 고인이 되었고... 길준이(나보다 15살 많으니 이렇게 부르면 안되겠지?)는 지금

음성 꽃동네 노인 요양원(할아버지 방)에서 방장을 하며 생존해 있다. 이 봄엔 한 번 찾아가 보아야 겠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어제, 할아버지의 기일을 지내며, 반추해 본 내 요람기...

근심, 걱정은 팔자였지만 나름,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날씨 참 좋다.

 

 

 


 

 

 

 

 

최지연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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